바다를 보고 왔다. 하루는 흐렸고 또 하루는 비가 많이 왔다. 그래서 파도가 무척이나 높았다. 그 높은 파도를 밤에 그리고 낮에 한참을 바라보았다. 잠들기 전에, 아침에 일어나서까지 나도 모르게 자꾸만 파도에 눈길이 갔다. 끝없이 반복되는 파도의 소리는 파도의 모양은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해 주었고, 김영하가 <여행의 이유>에 썼듯이, 나의 현재를 살게 해 주었다. 과거도, 미래도 아닌 바로 오늘을 직시하게 만드는 것이 여행의 힘이라는 그의 말에 나는 깊이 공감한다.
"파도 보면서 무슨 생각했어?" 차에서 그가 물었다. "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어. 그래서 좋았어." 내가 답했다. 그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음이 바로 현재의 삶을 살게 한다는 것은, 어찌 보면 억지이거나 역설일지도 모르나, 우리는 아니 나는, 너무 많은 생각을 이고 살아간다. 그러니 (역시 김영하의 표현대로) 무게 없는 그 생각이 나를 누르지 못하도록 해 주는 현재란 억지도 역설도 아닌, 고마움 그 자체다.
오늘은 여행의 힘을 시험이라도 해 보려는 듯, 엄한 꼴 앞에 마주하게 되는 상황에 처했다. 나는 그 시험에 지지 않기 위해 의연하게 대처했다. 내상을 전혀 입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, 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더 힘들었을지도 모른다고 위로한다. 여행을 자주 다녀야겠다.